1.04.2014

나는 휴대폰이 없다.


맨 처음 휴대폰을 본 기억은 1994년, 상경하여 호텔 사우나에서 일할 때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남자 손에, 안테나가 길게 뽑힌 묵직한 것이 들려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 사령관들이 들고 있음직한 무전기 같은 모양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망치 대용으로 쓸 수 있다던 그것이었다. 그 후로 휴대폰에 대한 변화의 소식은, 뉴스에서 간간히 들려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이에게 소식을 전하는 통신 수단은, 변화를 거듭했다. 현재의 휴대폰에 여러 가지 기능이 탑재되면서, 마치 일상생활의 필수품처럼 자리매김하였다.
내가 ‘휴대폰이 없다.’고 할 때, 상대방 표정을 보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집 전화번호를 말하면 뭔가 잘못된 듯 어투(語套)가 다르게 들리는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된다. - 부재 중 응답 전화인데도 - 사실은 그럴 걸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생활권의 문제일 수 있지만, 여타 문명의 이기(利器)와는 좀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활용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문명의 이기이니 만큼, 남들 사용하는데 간섭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제일 귀에 거슬리는 말은 ‘남들 다 가지고 있는데.’라는 말이다.

휴대폰의 용도와 필요성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통신
휴대폰의 일차 목적은 두말할 것 없이 - 음성이든, 문자이든 - 연락 수단이다. 업무용과 개인용으로 구분될 것 같다. 휴대폰의 본래 목적은 업무용에 가깝다고 생각되기에 개인용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한 가지 예만 들면 구구절절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다.
급하게 받아야 할 연락 중, 지인이 돌아가셨다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는가? 연락은 상대방에게 닿기만 하면, 시기가 좀 늦더라도 큰 문제없을 것이기 때문에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한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승과 저승은 연락이 안 되기에 대답은 ‘없다.’일 것이다. 결국 개인용은 다른 연락 수단이 존재한다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다는 것이 된다. 휴대폰이 필요치 않는 업무라면 같은 결론이겠다.

2. 기능
- 시계 : 집에 있을 때는 탁상시계, 외부에 있을 때는 어느 상점이든 벽시계 등이 있으므로 실상 필요하진 않지만, 습관처럼 쳐다보게 되는 물건이다. 계획성 있는 생활을 강요당한 관념 때문이다.
- 음악, 게임, 인터넷 :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며,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유희이지만 그로인해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잃는다. 그리고 반복적인 사용으로 중독성향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각각의 기능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기기들이 있지만, 휴대폰이 그 기능들을 취합함으로써 평상시 쓰지 않던 기능까지 활용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함과 능률에 있어 긍정적이지만, 대체수단이 없을 땐 유일무이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존성이 강해진다.

3. 비용
물건은 그 활용도에 의해 가치가 정해진다. 비용은 그 가치를 유지하고자 할 때 지불하게 된다. 동일한 가치라면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내 경우에는 우선, 집전화가 있다. 기본료 0원, 한 달 사용료 500원 이내의 통화. 이동 중 연락하고픈 상대는 없다. 누군가 내게 연락하고 싶으면 집전화에 메시지 남기면 된다. 예전에는 이동 중에 음악을 듣곤 했다. 카세트부터 이용했고, 인터넷 개설하면서 mp4를 사은품으로 받고, 한창 쓰다가, 지금은 책상 서랍행이다. 장을 보고 계산할 때는 신용카드가 사용된다. 집에서는 컴퓨터로 모든 취미생활과 정보를 얻는다. 영화감상, 음악감상, 인터넷 기타 등등. 이쯤이면 짐작이 되듯 휴대폰의 필요성이 내게는 아직 없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타인을 보는 나의 시선은 이렇다.

1. 음성통화
사용하는 휴대폰의 음질이 나쁜지(?) 통화내용이 다 들린다. 타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옆에서 듣기론 평소 대화 목소리보다 큰 감이다. 상대방의 귀청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담배 한 대 물며 같이 걱정하고 싶어진다.
발신 시 연결이라도 되지 않을 때는 즉시 응답을 기다릴 정도로 초조한 증상을 보인다.
역시나 받는 쪽보다는 거는 쪽에서 무엇인가 아쉬움이 커 보인다.

2. 휴대폰화면
그 작은 화면위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문자를 보내나 보다.’ 옛날 타자기에는 독수리타법이 있었는데 요즘은 뭐라 칭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글자판이 두 개정도 겹칠 만도 한데 요리조리 잘도 움직인다.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곁눈으로 슬쩍 보면 ‘영화를 보고 있다. 그것도 자막지원’ 대단한 천리안이 아닐 수 없다. 집에 있는 22인치 컴퓨터 모니터도 작게 느껴지는 나로선 신기할 정도이다.

내가 휴대폰이 없는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하자면 이렇게 말을 한다.
휴대폰이 없는 경우는 딱 2가지 경우이다.
첫째, 휴대폰에 관한 비용이 아까운 사람.
둘째,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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