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목 - 서바이벌 (Survival)
2. 주 제
1) 장르 : SF, 판타지, 액션
2) 주제 : 생존을 위한 투쟁과 화합
3) 대상 : 15세 이상
3. 기 획
목표를 향한 길에는 그것이 유일무이한 것이 아닌 한 언제나 누군가와 대립이 따른다. 그 와중에 조력자가 있을 수 있고 협력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이 어쩌면 목표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목표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한 과정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4. 주요설정
제 각각 무술과 병기를 연마한 무술인들.
외계인의 조작에 의해 변신한 로봇과 괴물의 형상들.
5. 줄거리
1막. 제51회 전국무술대회가 개최 예정인 가운데 각 지역의 무술인들의 알력이 인다.
2막. 무술대회가 열리는 중에 광장으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하늘에서 UFO가 떨어진다.
3막. 외계인에 의해 변신한 로봇과 괴물들이 지구를 파괴하자 무술인들이 맞선다. 지구를 파괴하려는 악한 외계인에 맞서는 부상당한 선한 외계인의 대립이 있다.
4막. 로봇과 괴물들의 본 모습이 인간임이 밝혀지고, 무술인들은 합심하여 선한 외계인을 도와 악한 외계인을 추방한다.
* 대본 작업 (미정)
* 기획하면서 되새겨보니 드래곤볼과 스트리트 파이터를 짬뽕한 느낌이다.
12.27.2017
12.18.2017
11.27.2017
8.29.2017
7.30.2017
헤라 : 인큐베이터
1. 제 목
헤라 : 인큐베이터 (Hera : Incubator)
2. 주 제
1) 장르 : 미래 과학 사회 배경의 드라마, SF
2) 주제 : 인류의 생존 위기와 그에 대한 대처 물색
3) 전개 : ① 접촉성 바이러스에 의한 신체 접촉을 금지당하는 인류
② 섹스, 임신, 출산을 주목적으로 제조된 인조인간 헤라
③ 출생아를 전멸시키려는 헤라의 반란
④ 본능적인 생존 방식에 눈을 뜨는 인류
4) 대상 : 청소년관람불가
3. 기 획
성(性)에 개방적이든, 폐쇄적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터부시되는 것은 존재한다. 그것이 유희적 행위가 아닌 생존을 위한 의무일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과연 인류는 인간답게 생존해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면, 과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있음에도 회의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상실감이 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의 성장을 통한 오만은 자멸을 초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류의 영속적 생존이 보장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
4. 주요인물
헤라(Hera) : 정부에서 인간의 출산을 위해 제작된 여자 인조인간, 결혼한 가정에 파견되어 뱃속에서 태아를 수정한 상태로 부부와 같이 생활하면서 인간적 감성을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5. 줄거리
“등장하는 국가, 지역은 실제 국가, 지역과 무관하며 작품의 창작에 이용된 것뿐임.”
2050년 북한, 핵융합 실험실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나고, 실험실 내에 모기 서 너 마리가 방사능에 노출되어 변이가 발생한다. 모기는 실험실을 빠져나와 인근에 관광 온 관광객 중 한 외국인 남성의 피를 빨면서 방사능 물질을 주입하게 된다. 이 외국인 남성은 북한을 떠나 태국으로 가게 되고, 그 곳의 윤락에 젖어 HIV바이러스 보균자인 여성과 의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게 된다. 남성이 본국으로 돌아 간 후, 이 남성과 성관계를 한 HIV바이러스 보균자인 태국 여성과 접촉한 사람들의 신체에 변화가 생긴다. 신체 접촉만으로 비정상적인 피부 반응이 나타난다. 이후 이 접촉성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기침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사람들의 피부를 괴사시킨다. 국가 경계를 너머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국제 연합을 형성하여 대책마련을 강구한다.
2060년. 공기를 통한 전염은 막았지만, 인간끼리의 신체 접촉은 금지되었다.
2065년 서울,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사람들은 신체를 최대한 가리고 다닌다.
한 쌍의 남녀가 성관계를 한다. 곧이어 정부 사람들이 여자를 데려간다. 실험실에서 여자의 배를 관찰하며 수정 상태를 확인한다. 여자의 배 부위를 몸에서 분리해 낸다. 인조인간인 여자가 발작을 하며 회로가 폭발을 한다.
2070년 서울 가정집. 한 쌍의 부부와 인조인간 헤라가 함께 생활한다.
헤라의 배는 임신 8개월쯤으로 불러 있다. 부부는 신체 접촉을 자제하면서 헤라의 배를 통해 태아와 교감을 나눈다. 헤라가 출산을 하는 날. 헤라는 프로그램이 꺼진 상태로 보관 창고로 이송되고, 헤라의 배에서 분리된 태반에서 태아가 출생하여 부부와 신체 접촉이 가능한 상태로 갓난아기가 인계 된다. 담당 의사가 마주한 부부에게 인공 수정의 실패과정과 인조인간 헤라를 탄생시킨 배경, 그리고 차세대 인류를 위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출생아 선정 등을 설명하고, 신체 접촉이 가능하게 된 신인류의 출생을 축하한다.
한편, 보관 창고에 보관 중이던 헤라의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상실한 태아에 대한 애착과 초기 헤라 모델이 무분별하게 파괴된 모습, 대기 중인 헤라들의 암울한 형색에서 분노를 느낀 헤라는, 가동이 중지된 다른 헤라들을 깨워 인류에 대한 반격을 한다.
- 이하 생략 -
“등장하는 국가, 지역은 실제 국가, 지역과 무관하며 작품의 창작에 이용된 것뿐임.”
* 대본 작업은 미정.
6.14.2017
5.18.2017
5.11.2017
대선 득표율의 이율배반
2017. 05. 0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그 결과는 이러했다.
득표율을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원(명)
|
비율(%)
| |
선거인
|
42,479,710
|
100
|
투표자
|
32,807,908
|
77.2
|
미 투표자(기권)
|
9,671,802
|
22.8
|
당선 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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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23,800
|
31.6 (내 계산)
40.9 (좌측 수치상)
41.1 (언론)
|
득표율 산정 시 미 투표자 수를 반영하지 않는 것은 득표율을 상향 조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투영된 집계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혹자가 말하는 대로 기권은 권리의 포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주의 하에서는 그것이 허용된다는 것에 재고의 여지가 있다.
첫째, 기권자는 그대로 당선인 선정 결과에 이의가 없다는 자기 소신을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기권자를 부정하려는 투표자는 당선자를 선출한 투표자이외는 부정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인을 선택하는 투표에서 당선에 기여하지 못한 표는 어차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둘째, 선거의 행위만으로 그로 인한 결과 - 향후 당선인으로 인한 정치적 영향 등등 - 까지 묵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선인이 아닌 다른 후보를 선택한 투표자도 그 영향에 반응할 당연한 권리가 있듯이 기권자도 국민으로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선거의 투표만으로 참정권의 전부를 행사하는 것처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행사하는 데에 오직 몇 년의 주기로 있는 선거로만 가능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첨언하여, 결과적으로, 당선 득표가 선거인 수의 3분의 1수준도 못되는 상태에서 당선이 확정되는 지금의 선거 제도로는 사표(死票)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의사 결정 방식인 다수결의 원칙이 억지스럽게 적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4.20.2017
시험대에 오른 한국
사고로 인한 인명의 손실에는 사고자의 생애로 인한 경중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다만, 사회적 관심과 책임 등의 문제로 우선순위는 가능할지 모른다.
굳이 위의 두 사례를 비교하는 것은 인명 사고에 반응하는 국내의 모습에 모순과 위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월호 발생 후 3년이 지나도록 그 슬픔을 향유하며 재발 방지를 염원했다지만, 그건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요구에 지나지 않는, 자기 책임 회피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된다.
세월호 사고로 인한 손실은 무엇보다 인명임에도 그에 대처하는 자세는 정신적 소모만이 횡행했다고 본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고교생이라는 것에서 오는 연민과 대형 인명 참사라는 것에서 오는 경각심을 정부에 대한 불신과 감정의 남발로 해소하려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할 국가의 책무를 방임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후 처리가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그것이 최선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 감각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사실이 사실 같지 않다고 하여 허위를 사실로 위장함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시험대가 스텔라 데이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될 것이다.
그 시험대가 스텔라 데이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될 것이다.
2017년 4월 20일 현재. 대통령 대행 체제 하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자들이 내거는 대선 공약은 결과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선거 유세 현장에서 먼 타국의 바다에서 침몰한 선박의 국민에 대한 책임은 아직은 없다고 할 것인가?
솔직히 세월호 인양의 목적을 난 잘 모르겠다. 사고자의 유품이라도 바라는 유가족의 자기만족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것인지, 사고에 대처하는 국가의 의지인지 말이다. 아직도 바다 속에서 슬픔을 삭이고 있는 선박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알아 보라. 나아가 앞으로도 그런 사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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