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014

자살을 생각하는 이에게...(Suicide No)


「 당신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재하는 의미는 있다. 」


당신은 지금 절망적인 기분이고,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 허무하게 생각될지도 모른다.
자문해 보라. 당신이 바라는 인생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는가?
삶을 풍요롭게 느끼게 해주는 돈?
타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인기?
자신의 말 한마디에 주위가 따르는 힘?

자살을 생각하는 당신에겐 아마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상당히 높다.
하지만 자살 했던 과거의 사람들 중에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던 사람도 있었다. 분명 그들은 현재의 처지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두려움이 더 컸던 탓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밑바닥을 한번이라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보이는 것은 희망이지만, 그걸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배고픔이다.
당신은 지금 굶주려 있는가?
서너 일을 물만으로 끼니를 채우는 기아에 허덕이는가?
생로병사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 고뇌 때문에, 밝아오는 태양이 부질없이 눈이 부시는가?
누구하나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는 이 없는 천애고아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든 아니든, 당신은 아직 살아 있다.
자살을 떠올릴 만큼 자신의 인생을 살아 왔고, 현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살아가는 것이 본능이다. 이름이나 생김새조차 기억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당신에게는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당신을 알아보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당신에 대한 기억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것이란 것은 분명하다. ‘산다는 의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혹은 스스로 빠져버린 굴레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지 말기 바란다.
흔한 이야기로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 속에는 살아 있을 때의 그 어떤 영광도,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는 고통의 시간은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고통을 느끼는 자체에 존재의 의미는 분명히 있다. 뱃가죽이 들어붙는 굶주림에서 맛도 못 느낄 음식을 먹어도 배는 불러 온다. 배가 부를수록 더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은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빵 하나를 사 먹어도 당신 덕분에 가게주인은 살아가는 것이고, 설령 돈이 없어 훔친다하더라도 경찰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어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 모두가 당신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난 후, 그 무덤 앞에서 그를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다면,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릴 누군가는 분명히 있다. 다만,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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