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2016

인터뷰 2016 Goodbye S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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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016

기름때 싫어하는 수리공

 Bicycle 1

승용차는 아직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기에 대중교통은 자연스레 나의 발이 되었었다.
문득 살고 있는 안산시에서는 자전거 타기에 좋은 환경이고, 출퇴근 또한 가능한 거리임을 떠올렸다. 현재 지역을 순회하며 조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동 수단을 생각하게 된 것이 자전거가 되었다.
핸드폰이 없는 나는 안산시의 공공자전거 [페달로]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중고자전거를 샀다. 보관상의 문제로 미니 접이식으로 샀다. 추진력을 올리려면 보통 성인 자전거보다 발을 더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는 불찰만 빼면, 나름 귀엽게 생긴 것으로 만족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 했든가. 몇 번 타면서 숨어있던 결함이 드러났고, 큰 파손이 아닌 한 스스로 고쳐 보려 했던 것이 결국 고장으로 이어졌으며, 추가 비용을 들여 수리점포에 의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전거 부품만 있었다면 굳이 수리점포에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됐었다는 것과 손에 기름때를 좀 더 묻히며 약간의 조절만 했더라면 애꿎은 부품 교체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정도의 자전거 수리 기술과 지식을 얻게 되었고, 고쳐 쓰기 보다는 새 것으로 바꾸려는 자전거 수리점포의 상술을 알게 되었다. 그 옛날 어릴 적 자전거 수리점포에서 튜브를 물에 잠그며 펑크 난 부분을 찾는 모습은 추억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다.

Bicycle 2

5.06.2016

의사의 독선

이 글에서 말하는 의사란 타인의 신체나 정신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행위를 하는 모든 이를 통틀어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정의하고 말하고자 한다.
내가 지금까지 치료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되짚어 볼까 한다.

1976년경 손목, 발목 골절로 접골원 같은 곳에서 치료 받음. 이후 오른쪽 발뒤꿈치 뼈가 틀어짐. 경제적 형편상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점도 있지만, 후유증상은 평생 남게 됨.

1987년경 이비인후과에서 알레르기비염 치료를 받음. 한번 치료로 끝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2년 후 재발함. 이후 분무식 습윤제로 버팀.

1988년경 안과에서 시력 검사 후 안경 맞춤. 그 후 25여 년 동안 안경을 서너 번 바꾼 기억이 남. 안경 도수의 변화를 잘 못 느꼈는데 시력이 곱절이상 떨어진 걸 느낌. 안경을 제작한 안경사의 전문성에 원인을 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착용하다보면 적응된다는 말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눈으로 체험하게 됨.

2006년 바위 위로 뛰어 내리다 예전부터 조금 비정상이 되어버린 오른쪽 발뒤꿈치 뼈가 으스러지는 사고를 냄. 응급실에서 X-Ray 찍고 반 깁스를 해 줌. 한의원에서 침으로 피를 뽑음. 1회 가고 안감. 2주 정도면 낫는다고 했는데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게 6개월 후였음. 그 후로 정형외과를 갔더니 ‘피를 왜 뽑았냐?’며 이미 뼈가 붙어버려 치료시기가 늦었다면서 의학 지식을 뇌까림. 전기 치료 1회 받은 후 안감. 집에서 혼자 발목 비틀어가며 재활치료하여 정상적으로 걸어 다니게 됨.

2015년 9월부터 동네 치과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음. 견적을 알아보았던 다른 두 군데에서는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 치아까지 뽑으려고 작정을 함. 수술 받은 임플란트 크라운 뒷면에 메탈이 부착되어 있어서 기대했던 모양과 다름에 당황스러웠으나, 치아의 반 이상을 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으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수술 받음. 수술 전 그런 설명이 있었다면 조정을 했을 것인데 은근히 후회와 원망이 남음. 또한 임플란트한 윗 어금니 세 개가 들뜨는 현상이 발생하며 다시 제작하게 되면서 잇몸이 조금 썩어 도려냈음. 내게는 설명해 주지 않고 의사와 간호사가 주고받는 말로 들음. 치아가 빠진 원인에 있어서 그 치과의 위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됨. ‘병원에서 병이 옮는다.’고, 치주질환으로 치료 받은 후, 다른 치아를 살펴봐 주는듯하면서 쿡 찔러보는 치아는 오래지 않아 빼버리고 말았음. 어차피 빠질 치아지만 시기가 빨리 왔다고나 할까.

같은 해 겨울 시작 무렵 바로 눈앞의 글이 안경을 벗어야 더 잘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 생김. 눈이 다시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됨. 안경을 새로 맞추기 위해 안과에서 시력 측정을  했는데, 간호사가 시력 검사를 하면서 내 얘기는 들으려고도 안함. 노안이 오면 초점이 점점 멀어진다고 자기 혼자 말함. 그 말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데. 안과 원장이 그 당시 착용했던 안경 도수 그대로 맞추면 된다고 하여,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췄는데, 시력 측정하면서 끼는 시험용 안경과 다른 눈의 초점을 느낌. 안경사에게서 또 다시 듣는 말 ‘적응하면 된다.’는 말. 동일한 도수로 맞추는 것인데 무얼 적응한다는 것인지 황당해짐. 다시 제작해 주려는 의도가 없는 듯 보여 화가 나서 다른 안과에서 시력교정수술인 라섹(LASEK)을 받음. 처음 3일간 눈이 퉁퉁 부으며 무지 가렵고, 따가웠는데 괜찮다고 함. 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안약에 첨가된 방부제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추측함. 이 후 처방된 안약 중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안약은 빼고 처방 받음. 하지만 치료용 스테로이드 안약은 지속적으로 넣었고 그로인한 부작용인지 불분명하지만, 오른쪽 눈 망막 시신경에 물혹이 생겨, 가로 직선이 휘어 보이는 현상을 겪음. 수술적인 방법은 대학병원에서 한다며 먹는 약만 처방해 줌. 한 달을 복용 후 약을 끊은 지 2주일 후에 조금 좋아지는 느낌을 받고, 약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음. 다음 한 달분 처방전을 받았지만 복용하지 않았고, 눈은 자연적으로 좀 더 좋아진 느낌을 받음. -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때 처방해준 약은 망막 혈관의 순환을 돕는 효능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내 몸은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이 있었고, 그걸 완화하기위해 땅콩을 먹기 시작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함. - 정기 재방문 하여 기본 검사 상으로 눈 상태는 좋다고 함.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망막 시신경의 물혹은 시력교정술과 무관한 증상이라며 그에 대한 2회 분의 각막 CT촬영과 처방전에 대한 진료비는 지불해야 했음.

2016년 국민건강보험의 건강검진을 받던 중 위 내시경 검사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함. 1주일 후 결과를 듣기위해 찾아 갔는데, 간호사가 의사에게 보이라며 온통 영어로 쓰인 조직검사 결과용지를 건네줌.
No Helicobacter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 왔음. 의사가 외국분이냐고 묻고 싶었음. 과형성용종이라는 나쁘지 않는 종양이라고 함. 소화성 궤양 치료제를 1개월분 처방해 주고, 3개월 후 내시경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함. 처방약을 구입하는데 내가 사는 동네 약국에는 없고, 건강 검진 받은 병원 옆에 위치한 약국에는 있었음. 동네 약국에서 주문하면 살 수 있었지만 기다리는 게 귀찮아서 그 약국까지 다시 가서 삼. 2주 정도 치료제를 복용 중 위가 꼬이는 찌릿함을 느끼고 복용 중지 함. 3개월 후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할지 망설여짐. 어차피 국민건강보험 건강검진 상 2년 마다 위 내시경 검사를 하기 때문임.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르는 말로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평균수명이란 전쟁, 전염병, 대형 참사와 같은 대량 인명 사고가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수명은 여전히 ‘최장수명’의 한계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매커니즘(Mechanism, 체제)은 정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큰 병원에는 어김없이 ‘장례식장’이 있다. 그것은 의학의 한계를 당당하게 말해주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진료에는 믿음과 신뢰의 선을 넘어 절대적인 독선이 있음을 느낀다.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결과는 오롯이 환자의 몫이다. 그것이 의술의 한계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일지라도 말이다.
의사의 독선이라 함은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의사 본인의 의학적 지식에 따라 환자의 병(病)을 임의로 진단하고, 치료에 있어 영리를 꾀하는 의사의 행위로 일컫고 싶다.

이 땅의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남루하고 핼쑥한 환자가 찾아와서 복통을 호소하여 진찰한 결과 영양실조라면 어떤 처방을 하겠는가?
영양제 주사를 놔주고 치료비를 청구하겠는가?
아니면 장기려(1911∼1995) 박사와 같이 환자의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맛있는 것을 사먹으라고 하겠는가?
의학 상식이 부족한 우문(愚問)이었지만, 진정 환자를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묻고 싶은 의도였다.


4.30.2016

미인어를 통해 본 시대상



미인어(美人魚, Mermaid, 2016)

예술 작품은 좋다, 나쁘다하는 선악(善惡)적인 개념은 있을 수 없고, 다만 개인적 흥미로서의 좋다, 좋지 않다는 호불호(好不好)적인 개념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대중적인 호응도가 개인의 의식 수준과 격차가 너무 나는데 대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문화의 경계는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국가적 태생은 무의미함을 보여 주었던 것이 몇 년 전 있었다. 2012년 발표된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그러했다.
전 세계적으로 불리어 질 때만해도 내게 있어선 ‘사는 게 심심한 대중’의 잔치쯤으로 생각됐었다. 그 노래로 인해 인류가 상처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어쭙잖은 국가적 자존심을 운운하는 것이 눈꼴사납게 보였지만 말이다. - 내 귀에는 외국 멜로디가 짜깁기 된 곡을 자국의 곡인 양 찬양하는 모습에서 오죽 내세울게 없나 싶은 안쓰러움이 일었었다. -
그런데 그때의 비스무리한 느낌을 주성치(周星馳)감독의 미인어(美人魚, Mermaid, 2016) 영화를 통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소재가 특이한 것도 아니고, - 비록 인어를 재현한 것은 최근에 있어서 생소하지만, 특별할 만한 것도 아니기에 - 사람과 인어의 사랑이라고 하면 영화적으로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런 줄거리가 흥미를 크게 끌만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코미디 장르적 장면에서도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애매했었고, 영상미가 돋보이는 촬영기법이 쓰인 것도 아닌, 상상 그 정도의 컴퓨터 그래픽(CG)만 보인 것뿐인데, 현재 중국의 역대 흥행 탑(Top)을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천만 관객 시대를 열면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나 할까? 영화가 감동과 재미를 넘어 더 이상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무료한 일상의 심심풀이 땅콩과 같은 소일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면, 국가적 자존심을 내세우기라도 하듯 포장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휴나 특정한 날에 개봉하여 관객몰이를 한다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그 작품에 대해선 평가절하하고 싶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관객의 유치에 목표를 두겠지만, 관객입장에서는 굳이 시일에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선택하고자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는 흥행한다. 하지만 흥행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니다. 반대로 좋은 영화임에도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 그 판단의 기준이 돈으로 평가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3.27.2016

낙오자들을 위한 데드풀

Deadpool, 2016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침대에서 상상 가능한 장면이 엿보이도록 선정적이고, 사람 머리가 잘리는 등 직설적인 폭력 장면이 담겨 있다.
일그러진 피부를 감추는 복장으로 사회의 냉대와 열등감을 피하려는 데드풀은 기존의 영웅물에 등장하는 히어로의 가면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우월감과 사뭇 대조적이다.
예고편에서 보였던, 랩을 흥얼거리며 다소 촐랑대는 모습에서 가름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만화에서는 어떤 히어로의 모습인지 모르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데드풀은 예전의 평범한 얼굴로 돌아가려는 복수의 화신이었다.
영화가 대리만족이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데드풀의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모습들은, 현실에서 은밀히 즐기고 싶은 이들을 자극하는데, 저속하면서도 솔직하다.
죽음에 이르는 암세포대신 불사의 몸이 되었지만, 쭈글쭈글해진 피부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도록 망설이게 만들었다. 현실의 외모지상주의에 따른 반향처럼.
하지만 결국엔 사랑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희망(?)을 안겨 주었다.

또한 현실적으로 영화가 히트하며 수익을 낳으니까, 자본주의적 색채가 드러나는 글들을 보면서 지극히 희화(喜話)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감이 든다. - 과정이 어찌되든 결과적으로 돈을 벌었으면 됐다라는 듯한 -
일반인과 동일한 감정과 행동을 한다면 그는 영웅이 될 수 없음에도 동질감을 느낀다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데드풀의 탄생에는 절대 강자에 대한 반항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멸하지 않는 암적 존재같은 인간의 감춰진 본능 덩어리를 영웅으로 희석시켜 균형을 맞춘 것처럼 말이다.



3.16.2016

운동과 다이어트

운동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

비만과 병(病)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위하여 행하는 식이요법(Diet)과 운동을  하는데 있어, 매체에서 떠드는 말들은 왜 그렇게 장황하고,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은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리고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초점이 맞춰 있기 보다는 평균적이고 통계적 대상에  더 중점을 두고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았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의식주가 변하고 그로인해 생활의 형태가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건강한 삶을 위한 방법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 그건 인간의 신체는 동물의 본능적 양태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삶은 지능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하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배부르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졸리면 잔다. 인간의 지성은 변화무쌍하지만, 신체는 이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문명 생활이란 틀에 적응하려다보니 먹는 것, 활동하는 것, 자는 것 등을 규칙적으로 통제하는 것뿐이다.
우선, 먹는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건강을 위해 자연식을 해야 한다. 육식보다는 채식위주로 식사를 해야 한다. 칼로리를 염두하며 식사를 해야 한다. 등등 내게는 참 배부르고, 잘사는 사람들만 건강에 대해 말들을 하는구나할 정도의 이야기들로 들린다. 그런 말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부질없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위생적으로 불량하지 않다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고 싶은 데로 배불리 먹어라. 단, 과식(過食)만은 하지 말라. 식후 디저트로 과일 등을 먹을 계획이면 식사는 조금 덜먹어야 맞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론 밥을 배불리 먹고 소화시킨다면서 과일을 찾지는 않는가?
또한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식사를 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지배되고 있지는 않는가?
요점은 이것이다. 활동하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의 굶주림이나 포식이 아닌 한, 배부름은 살아있는 행복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 먹는 종류가 무엇이든, 얼마만큼 먹든, 그건 개개인의 량에 달려있다. 식사량이 개개인의 활동량과 신체적 특성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비만은 십중팔구 과식에서 비롯되지만, 특이하게 인류학상 신체적으로 그런 인자가 있는 것도 아닌가 싶다. 동물을 예로 들면 초식동물치고 뚱뚱하지 않는 동물이 없는데 사슴 등은 예외이듯이 말이다.

다음으로 운동이란 것은 달리 말하면 활동의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비등한 신체일지라도 생활방식에 따라 다른 활동량을 보인다면 식사량은 물론이요, 운동도 거기에 대응시켜야 한다. 또한 나이에 따른 신체의 변화는 무시 못 할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운동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면 안되는 게 운동의 올바른 방향이다. 개개인이 동경하는 육체미를 염두하며 생활과 별도로 운동을 한다면 수긍이 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정도의 문제가 남는다.
운동의 종류와 방법을 굳이 말하는 것은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것을 어느 특정 목적에 부합되도록 틀에 맞추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운동은 신체를 움직이는 것이 주 목적이고, 어떤 동작에 맞추는 것은 부가적이라는 것이다.
매일 식사를 하듯이 운동도 - 신체를 움직이는 것 - 매일 해야 한다. 그것도 식사량에 비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땀이 나도록 움직인다면 몸은 더욱 단련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 세태를 꼬집어본다면, 여자들의 다이어트는 늘씬한 몸매를 위한 식사의 조절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고, 남자들은 20 ~ 30대의 보디빌더같은 신체를 만드는 것이 운동의 효과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몸짱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운동을 하다보면 몸짱이 되는 것이지, 몸짱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본말전도가 되는 듯 싶다. 한창 먹을 나이에 덜먹고, 다양한 움직임으로 운동해야할 때 지엽적인 동작으로 신체 활동에 제한을 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2.26.2016

수프(Soup)

1. 제 목 : 수프 ( Soup )

2. 주 제

 1) 장르 : 현대 배경의 드라마.
 2) 주제 : 수프에 담긴 그리움.
 3) 전개 :
① 현재 도시의 양식당을 성년의 여주인공이 운영하고 있다.
② 과거 도시의 양식당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손녀 여주인공.
③ 과거 도심지로 가출하여 고생하는 여주인공.
④ 현재 도시의 양식당을 이어받은 여주인공.
 4) 대상 : 전체 관람가

3. 기 획

지금의 현재는 각종 음식이 풍부하고 그 맛도 다양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느끼고 싶은 맛이 있다.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보기 드문 음식도 아닌데 유독 끌렸던 맛이 있다. 즐겨 찾는 맛에 길들여지면서 정작 먹고 싶었던 그 음식을 잊어갈 때쯤 불현 듯 그 맛을 느끼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그 음식에 담긴 고유의 맛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한 그리움의 흔적일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사람은 그 식당에 대한 추억일 것이요,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통한 가족의 역사일 것이다.

4. 주요 인물

현재의 여주인공 (30) : 양식당 주인.
과거의 여주인공 (18) : 고등학교 졸업생.
과거의 여주인공 친구(18)
할아버지 (60) : 양식당 운영, 손녀인 여주인공을 보살핌.
장님 할머니 (60) : 할아버지를 짝사랑했던 손님.
청년 (30) : 장님 할머니 아들.

5. 줄거리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여주인공은 양식당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식당일을 도우면서 성장한다. 친구들과 스마트폰으로 최신 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여주인공은 고등학교 졸업 후 양식당을 이어받을 것에 불만이다. 사는 곳이 도시라 할지라도 시골 못지않은 풍경들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식당일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고교를 졸업 후 도심으로 친구와 야반도주하였으나, 아르바이트일로 심신만 고달플 뿐이었다. 함께 가출했던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어서 할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전한다. 할아버지의 사망으로 양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하게 되는 여주인공 앞에, 과거 할아버지를 짝사랑했었던 할머니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식당을 들어와 수프를 주문한다. 예전의 맛과 같음을 느끼며 장님 할머니는 눈물을 흘린다. 장님 할머니로부터 할아버지가 여주인공을 기다리며 식당을 지킨 이야기를 듣게 되는 여주인공도 눈물로써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P.S. : 꿈결에 파노라마처럼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본 작업은 미정.